November 2024

1207 12회 맑스 코뮤날레 발표

12월 7일 합정 필로버스에서 열리는 제12회 맑스 코뮤날레에서 발표합니다. 발표 제목은 “새로운 체제, 동일한 모순?: 기술봉건론과 그 함의”로, 얼마전 <문학동네>에 발표했던 기술봉건론에 대한 글을 조금 더 풀어서 논해보려고 합니다. “맑스 코뮤날레”라는 뜻깊은 행사에도 제가 속해 있는 <금융노동연구회F>에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https://www.marxcommunale2024.info/2024-MARX-COMMUNALE-13869a49b431800a8e27ff03808acc0e

 

 

 

1206 2024 한국기본소득포럼 발표

12월 6일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에서 개최하는 <2024 한국기본소득포럼>에서 “한국 공유부 기본소득론의 역사적 궤적”이란 제목으로 발표 합니다. 발표 자체는 공동 연구자인 위스콘신대 사회학과 조민서샘이 맡아서, 현재 저와 함께 실행하고 있는 연구의 문제의식과 내용을 간략히 소개할 예정입니다. 유투브로도 중계되는 모양이니 해당 주제에 관심있으신 분들은 링크를 방문해보시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https://basicincomekorea.org/korea-ubi-forum-2024/

 

 

1205 <경계를 넘는 공동체> 콜로키엄 토론

12월 5일 서울대 아시아연구소에서 주최하는 <경계를 넘는 공동체> 콜로키엄에 토론자로 참석합니다. 현재 독일 막스플랑크 사회인류학 연구소장으로 재직 중인 중국출신 인류학자 샹바오를 초청하여 그의 저작 <경계를 넘는 공동체: 베이징 저장촌 생활사>(박우 역, 글항아리, 2024)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리입니다. 줌으로 진행되는 행사로, 사전 등록 링크도 함께 남겨놓습니다.

https://docs.google.com/forms/d/e/1FAIpQLSf6kyZlyCSFNJrfxgtgx1SirexMZgP33191qqW8Z4eCKorzwQ/viewform

 

 

“가치의 측정, 측정의 가치” 토론문

꽤나 즐거운 기분으로 쓴 토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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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분 선생님 발표 너무 흥미롭게 잘 들었습니다. 경제인류학 분야에서 가치와 측정의 문제는 오랫동안 핵심적인 문제였고 최근 들어 점점 더 그 중요성이 부각되는 주제인데, 네 분 선생님 발표를 통해 이 주제의 중요성과 확장성에 대해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시간이 충분치 않다보니 제 토론은 개별 발표에 질문을 드리거나 코멘트를 하기보다는 이 발표문들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중요한 테제들을 다시 한 번 정리하고, 가치측정 문제와 관련해 경제인류학/경제사회학 영역에서 이루어진 두 가지 연구사례를 짤막하게 소개하는 것으로 갈음하겠습니다.

오늘 발표들은 가치 측정의 문제를 논의할 때, 우리가 다음과 같은 점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1) 측정의 ‘수행성(performativity)’과 ‘가치화(valuation)’ 실천: 홍성욱 선생님이 이언 해킹의 논의를 빌어, 배종훈 선생님이 메리 더글라스와 피터 버거·토마스 루크만의 논의를 통해 보여주었듯이, 가치의 측정이라는 것은 단순히 기존에 생산된 가치를 단순히 반영 혹은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측정 그 자체를 통해 가치의 사회적·물질적 구성에 수행적으로 참여하게 됩니다. 이 때 측정의 수행성이란 측정 자체가 측정 대상이 되는 현상에 영향을 미치고 그 가치를 조작적으로 정의하고 창출해 낸다는 의미에 한정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위험(risk)의 측정과 보험산업 및 근대 자본주의의 등장 간의 긴밀한 관계를 지적한 석승훈 선생님의 발표에서 보듯이, 측정은 일종의 ‘공통 언어 혹은 화폐’를 제공함으로써 가치가 구성되고 순환되는 장(field)과 제도적 연결망 자체를 창출하는데 핵심적 역할을 수행합니다. 만약 우리가 이러한 측정의 수행성을 진지하게 고려한다면, 흔히 별도로 사고되는 (재현적) ‘가치평가(evaluation)’와 (실재적) ‘가치증식/생산(valorization)’이 실제로는 그리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으며, 측정은 이 둘이 결합된 수행적 “가치화(valuation)” 실천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Vatin 2013; Muniesa 2014).

2) ‘질적인 것’의 측정과 양질계산(qualculation): 미래와 위험의 측정과 관련된 석승훈 선생님의 발표나 ‘소셜 임팩트’와 같이 눈에 보이지 않고 질적인 대상의 측정에 대한 박성훈 선생님의 발표는, 측정의 실천이 단순히 양적인 것 혹은 실체를 가진 것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제 생각에는 이러한 질적인 것의 측정을 다룰 때, ‘측정이 모든 요소를 양적인 것으로 환원한다’는 식으로 단순하게 이해하지 않는 것이 중요해 보입니다. 우리가 미래와 위험에 대해 논할 때 혹은 사회적 가치에 대해 논할 때, 꿈이나 비전, 개인적 경험과 열정 등에 기반한 여러 ‘이야기’들을 제시하게 됩니다. 박성훈 선생님이 ‘Narrative and Numbers’(애스워드 다모다란의 베스트셀링 책 제목이기도 하다)를 이야기했듯이, 이 때 열정과 정동에 기반한 스토리텔링 일반 역시, (양적 측정과는 일정정도 구분되지만) 일종의 가치화 실천이자 측정과 계산의 일부를 구성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미셸 칼롱과 존 로는 이렇듯 질적인 것에 대한 판단을 포함하는 다양한 형태의 가치화 실천들을 일컫기 위해 ‘qualculation(양질계산)’이라는 신조어를 제시하기도 합니다(Callon and Law 2005). 오늘날 가치측정과 가치화의 실천들이 일상의 광범위한 질적인 영역에서도 작동한다는 점에서 이 양질계산의 문제는 중요한 연구대상으로 부상한 것처럼 보입니다.

3) 측정의 정치: 골상학 및 우생학, 그리고 제국주의와 측정·기입의 관계에 대한 홍성욱 선생님의 발표에서 드러나듯이, 사회문화적 맥락 속에서 행해지는 측정은 당대의 이데올로기 지형을 반영하고 동시에 적극적으로 생산하는 정치적 역할을 수행해 왔습니다. 이러한 다양한 사례들에 기반해 우리는 ‘측정의 정치’라는 것에 대해 논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 생각에는 무엇보다 측정의 정치가 다층적이라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먼저 측정 방식과 그 ‘정확성’을 둘러싼 갈등과 경합의 정치가 존재합니다. 특정한 현상을 어떠한 방법으로 측정할 것인가라는 이슈는, 그 자체로 지식장에서 정치적 경합의 속성을 가집니다. 여기에 덧붙여, 앞서 지적한대로 측정 자체가 장이나 행위자 연결망을 탄생시키는 공통의 언어로 기능한다면, 측정을 통해 상이한 이해관계를 가진 행위자들의 동맹과 연합이 형성되는 정치적 차원이 존재합니다. 더 나아가 “측정해야 관리할 수 있다”는 피터 드러커의 유명한 경구나 “원격 행위(action at a distance)”에 대한 라투르의 논의처럼 측정을 통해 통치 대상을 가시화하고 관리하는 통치성(governmentality)으로서의 측정 역시, 측정의 정치의 한 층위를 이룹니다. 마지막으로 측정이 과연 누구의 관점에서 어떤 목적으로 이루어지는가라는 근본적 질문과 관련된 측정의 정치성이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이들 층위는 서로 분리되기보다는 긴밀히 결합하여 작동하며, 이런 점에서 측정은 정치의 기반을 이루는 행위인 동시에 그 자체로 정치적 행위임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습니다. “모든 숫자는 특수한 사회·물리적 환경 속에서 이루어진 복합적인 협상과정의 산물로서 사회적 숫자(social numbers)”라는 경제인류학의 격언을 넘어서(Guyer, Khan, and Obarrio 2010: 36), “모든 숫자는 정치적 숫자”라고 말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러한 테제들에 기반해 경제인류학/경제사회학에서 측정의 문제를 검토한 다음의 두 가지 연구를 간략히 소개하며 토론을 마치고자 합니다.

Timothy Mitchell, Rule of Experts: Egypt, Techno-Politics, Modernit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2002)
오늘날 사회적으로 가장 영향력있는 지표 중 하나는 GDP라는 데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 또한 이 GDP가 대공황과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뉴딜정책과 전시경제를 뒷받침하기 위해 사이먼 쿠즈네츠(Simon Kuznets)를 중심으로 한 미국의 계량경제학자 집단에 의해 발명·발전되었다는 사실 역시 잘 알려져 있다. 이 책에서 인류학자 티모시 미첼은 이러한 GDP 측정이 1950년대 이후 이집트 발전 프로그램에 도입되면서, 단순히 경제현실을 반영하는 객관적 지표로서의 역할을 넘어 경제 영역 자체를 특정한 방향으로 조직해나가는 수행성을 발휘하는 과정을 추적한다. 예컨대, GDP로 측정되지 않는 가사 노동이나 비공식 경제 등은 정책에서 배제되고, GDP를 증진시키는 화폐와 시장 경제에 집중적으로 자원이 배분되는 방식으로 GDP 지표가 수행성을 발휘했다는 것이다. 미첼은 이에 기반해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경제’―뚜렷한 국민경제의 경계를 가지며 성장과 위기의 주체가 되고 상호비교가능한 기본 단위―라는 대상이 20세기 중반이 되어서야 탄생했다는 과감한 주장을 펼친다. 이는 특정 대상은 그것을 측정하고 순치·관리하는 장치들과의 결합을 통해서만 존재한다는 ANT의 문제의식에 기반한 주장이라 할 수 있다.

Liliana Doganova, Discounting the Future: The Ascendancy of a Political Technology (Zone Books, 2024)
미셸 칼롱의 제자이자 동료인 릴리아나 도가노바는 이 책에서 ‘미래할인’이라는 미래의 가치계산 기술의 역사에 대해 분석한다. 그녀에 따르면, 18-19세기 독일에서 숲의 가치를 어떻게 측정할 것인가를 둘러싼 논쟁 과정에서 구체화된 미래할인 테크닉은, 미래를 ‘할인’하고 현재를 강조하는 ‘금융 투자자’의 관점을 반영하는 동시에, 미래를 정치의 장으로 구성해냈다는 데에서 의의를 가진다. 이제 미래의 ‘할인율’(석승훈 선생님이 지적한 이자율)을 어떻게 결정하고 적용할 것인가를 둘러싼 정치적 경합이 발생하게 되면서, 미래를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 자체가 중요한 정치의 대상으로 편입된다는 것이다. 이 책에 서술된 대표적인 예는 1970년 칠레에서 아옌데 사회주의 정권이 집권해 초국적 자본이 소유하고 있던 구리 광산을 국유화했을 때, 이 자산의 가치를 어떻게 측정하고 보상해줄 것인가라는 쟁점이다. 이 구리 광산의 가치 측정을 둘러싼 첨예한 대립이 발생했고, 이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1973년 CIA와 초국적 자본의 지지를 받은 피노체트의 쿠데타로 이어지게 된다.

 

Reference
Callon, Michel and John Law. 2005. “On Qualculation, Agency, and Otherness.” Environment and Planning D, 23(5), pp. 717~733.
Guyer, Jane, Naveeda Khan, and Juan Obarrio, 2010, “Introduction,” Anthropological Theory 10(1-2): 36-61.
Muniesa, Fabian, 2014, The Provoked Economy, London: Routledge.
Vatin, Francois, 2013, “Valuation as Evaluating and Valorizing,” Valuation Studies 1(1): 51-81.

1108 서울대학교 기업과 사회 연구회 포룸 토론

11월 8일 서울대학교 ‘기업과 사회’ 연구회에서 “[공적] 가치의 측정, 측정의 [공적]가치”를 주제로 포럼을 엽니다. 저도 이 연구회 회원인데, 이번에는 발표가 아닌 토론만을 맡았습니다. 발표하시는 선생님들의 면면에서 보듯이, 매우 흥미롭고 심도 깊은 행사가 될 것 같습니다. 관심있으신 분들의 참여 바랍니다.

 

 

 

“21세기 한국 민속지의 이론적 과제: 공동체의 중심과 주변을 향한 시선” 토론문

서울대학교 민속학센터 창립학술대회에서 발표된 오창현 선생님의 글, “21세기 한국 민속지의 이론적 과제: 공동체의 중심과 주변을 향한 시선”에 대한 토론문. 민속학 연구자가 아님에도, 발표문 자체가 워낙 흥미로운 문제제기와 내용을 담고 있어, 즐거운 마음으로 토론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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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창현, 「21세기 한국 민속지의 이론적 과제: 공동체의 중심과 주변을 향한 시선」 토론문

 

오창현 선생님의 글은 세계시장화·대중사회화·인류세 기후위기와 같은 조건이 전면화된 21세기 민속학의 새로운 방향으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과제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첫째, 고전적인 문화전파론의 문제의식을 발전적으로 계승하여 특정한 생활양식이 주변부로 확산되는 과정을 시장과 일상구조의 역동 속에서 추적하는 것. 둘째, 대중사회에서의 민속을 연구하기 위한 새로운 현장연구 방법론으로 ‘행위자-네트워크-이론(ANT)’의 문제의식을 빌려 이질적인 인간-비인간 행위자 간 네트워크와 이들 간의 구체적 ‘번역’ 과정에 주목하는 것. 셋째, 인간주체 중심의 서구 근대성에 대한 비판과 성찰을 위해 주변부의 문화, 특히 비인간 존재와 교류하고 공존해온 주변부의 ‘자연문화’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는 것.

저는 현대금융을 연구하는 인류학자로서 민속학에는 과문하지만, 오창현 선생님의 지적은 변화하는 현대사회에서 민속학의 새로운 방향설정과 관련해 시의적절한 문제제기와 제언이라 생각됩니다. 특히 최근 ‘신유물론’이나 ‘존재론적·물질적 전회’라는 이름으로 인문사회과학 전반에서 증가하고 있는 물질문화나 비인간 행위자에 대한 관심이, 사실은 민속학 내에서 오랫동안 이어져온 고전적 문제의식이라는 점에서, 이러한 제안은 더욱 특별하게 다가옵니다. 민속학에서 이러한 문제의식을 되살려 사물과 비인간에 대한 연구를 선도해 나간다면, 다른 분과학문과의 상호교류와 대화도 더욱 활성화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더 나아가 오창현 선생님은 행위자-네트워크에서 이질적 행위자들을 연결하는 번역자로서 ‘상인’에 대한 연구를, 비인간 행위자와의 관계를 포함한 전근대 자연문화의 예로 ‘백정의 민속’을 제시하는 등 이러한 이론적 과제를 실현할 구체적인 연구 주제도 함께 제안하고 있기에, 향후 선생님과 민속학계의 새로운 연구에 대한 큰 기대를 갖게 합니다.

이 토론문은 선생님의 새로운 방향제안에 동의하고 또 응원하면서, 이를 위해 추가적으로 고려하면 좋을 것 같은 두어 가지 사안들에 대해 간략히 논해보고자 합니다. 이하 경어는 생략하겠습니다.

 

1. 매개/장치의 문제에 대해
오창현의 글은 전세계화된 대중사회의 생활양식과 일상적 소비를 분석하기 위해서 어떠한 새로운 현장연구 방법론이 필요한지 질문하고, 그 답으로 ‘행위자-네트워크-이론’을 제시하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이러한 행위자-네트워크-이론의 유용성은 “다양한 비인간 행위자 네트워크”와 이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이질적인 것들의 번역 과정”에 의존하는 “현대사회의 본질적인 특성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6쪽). 이러한 방법론을 한일간 해조류 교역이라는 구체적인 연구에 적용하면서, 저자는 이질적인 소비자들과 생산자들을 연결시키는 ‘번역자’로서 상인의 역할에 주목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그런데 인간행위자 ‘상인’에 초점을 맞춘 이같은 접근은 초국적 상업 네트워크를 경험적으로 분석하기 위한 흥미로운 통로이지만, 행위자-네트워크-이론을 활용한 것이라 보기엔 다소 제한적이고 전통적인 접근으로 보인다. 흥미롭게도 최근 문화인류학 쪽에서도 대중 및 군중현상 대상으로 한 인류학적 현장연구의 새로운 방법론에 대한 고민들이 제출되고 있는데(e.g., Lepinay and Latour 2009, Samet 2019, Cody 2023), 이들의 논의를 참고해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행위자-네트워크-이론의 직·간접적 영향 속에서 이들은 공통적으로 이질적인 대중과 각종 행위자들의 네트워크에 접근하는 통로로서, ‘매개/매체(media)’와 ‘장치(device/dispositif)’의 문제에 주목하고 있다. 라투르(2016: 6장)가 보여주듯이, 네트워크의 확장은 이질적 행위자들을 매개·번역하고 연결시켜주는 각종 장치들―예컨대, 지도, 나침반, 표본, 다이어그램, 로그, 항해술, 서류양식, 우편체계, 기입도구 등등―의 증식을 동반한다. 네트워크가 확장되고 조밀해 질수록 이들 장치 역시 함께 증식하며, 역으로 이러한 장치를 통해서만 행위자들은 단단한 동맹을 형성하게 된다.

저자가 제안하고 있는 ‘상인’에 대한 연구와 이들의 ‘매개’나 ‘장치’에 대한 고민은 서로 상충하기보다는 상호 보완적인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저자가 들고 있는 예처럼 상인들이 일본 홋카이도와 조선의 경성, 함경도의 청진 등을 넘나들며 “세 지역을 번역하며 부를 축적”했을 때(8쪽), 어떠한 장치와 인프라스트럭처를 통해 정보가 번역·소통되었고, 어떠한 계산장치에 기반해 상인들이 결정을 내리고, 어떠한 기술들이 이러한 결정의 실행을 가능하게 했는지에 대해 질문해볼 수 있을 것이다. 혹은 20세기 초 조선의 명란이 일본으로 수출되고, 일본의 명태살이 조선에 수입될 때, 이러한 교역의 네트워크를 만들고 명란과 명태살을 상품화하는 것을 가능케 했던 기술과 시장장치, 인프라스트럭처의 변화는 무엇이었는지 구체적으로 추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매개 혹은 장치에 대한 관심은 저자가 제시하는 다른 논의에도 확대될 수 있다. 예컨대, 저자가 제안하는 문화전파 문제의식의 발전적 계승과 시장-물질생활의 역동에 따른 중심부 생활양식의 확산은, 이 전파를 가능케하는 장치와 매개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 저자의 주장처럼 한국의 근대화 과정에서 유교적 질서와 시장질서가 양립하고 상호변용되며 확산되어 나갔다면, 이 둘의 결합을 가능하게 했던 각종 장치들에 대해 물어볼 수 있을 것이다. (저자가 본문에서 언급하고 있는 계나 마을의 공동자산, 공동양식 등은 이러한 결합과 전파를 가능케한 장치 혹은 매개로서 분석될 수 있다.) 또한 저자가 제시하는 인간과 비인간 간의 상호소통을 전제로 한 자연문화에 대한 연구 역시, 이들 행위자 사이를 매개하는 (의례를 포함한) 번역 장치들에 대한 연구로 보충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 저자의 문제의식처럼 민속학 현장연구에서 행위자-네트워크-이론의 문제의식을 적극적으로 받아안기 위해서, 매개 혹은 장치의 문제에 조금 더 깊이 천착해보는 것은 어떨지 제안하고 싶다.

 

2. 공동체의 스케일, 그리고 중심-주변의 문제에 대해
이 글의 부제는 “공동체의 중심과 주변을 향한 시선”이다. 저자의 설명대로 기존의 민속학이 “주류보다는 비주류”(9쪽), 중심보다는 주변의 문화에 관심을 기울여왔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 부제 자체가 놀라운 것은 아니다. 다만 토론자는 이 부제와 관련해 두 가지만 질문하고 싶다. 첫째, 여기서 이야기되는 공동체의 구체적 스케일(scale)은 무엇인가? 즉, 저자가 “물질구조가 실은 사회적 의미를 전제로 하는 공동체에 기반해 전개되어 형성된다는 점”(3쪽)을 강조할 때, 이 사회적 의미를 공유하는 공동체는 어떤 단위(마을, 지역, 민족국가, 세계시장 등)를 염두에 둔 것인가? 둘째, 이와 관련하여 발표문에서 중심-주변의 축 역시 고정되지 않고 계속해서 변용되며 미끄러진다. 어떤 논의에서 중심은 상층신분과 “도시부의 문화”로 제시되고(2쪽), 다른 곳에서는 서구 근대성을 의미하며(9쪽), 어떤 논의에서는 “주변을 강하게 끌어들이며 주변부가 변화를 강요당하는” 소용돌이 한국사회의 특정한 구심점이 된다(10쪽).

토론자는 저자가 공동체의 스케일이나 중심-주변의 축을 명확히 정의하지 않는다고 비판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같은 공동체의 다층적 스케일과 계속해서 자리바꿈하는 중심-주변의 축이, (저자의 표현을 빌자면) 다양하고 이질적인 “행위자 네트워크에 의존하는 현대사회의 본질적인 특성을 반영하는 것”(6)은 아닌가라고 질문하고 싶다. 이는 저자가 기존 민속학의 관점에서 차용한 공동체, 중심-주변의 틀과 민속학의 이론적 혁신을 위한 자원으로 언급하는 행위자-네트워크-이론 간에 일정 정도의 긴장관계가 있을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예컨대, 오히려 물어야될 질문은 네트워크로 연결된 “세계자본주의”(1쪽)에서 공동체 및 중심-주변의 관계가 어떻게 재설정되는지 혹은 공동체와 중심-주변의 규정 자체가 다시 사고되어야 하는 것은 아닌지 등에 관한 것이 아닐까?

저자의 핵심 주장이 “공간을 일상적인 생활양식이 출현하는 중심부와 중심부로부터 영향을 받으며 주체적으로 수용하는 주변부로 나누고 생활양식의 변동을 시간에 따라 양자 간의 상호작용으로 분석하고자 했던 20세기 초 민속학적 방법론을 발전적으로 계승해야 한다”는 것이라면(1쪽), 이 때 ‘발전적’ 계승이 중심-주변의 설정과 관계(즉, 중심의 영향력과 주변의 주체적 수용)을 그대로 둔 채 비인간 행위자와 네트워크라는 문제의식만을 추가하는 것인지, 아니면 중심-주변의 규정과 이 둘 간의 관계 자체를 네트워크와 대칭성 인류학의 관점에서 다시 사고하는 데까지 나아가려는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제기하고 싶다.

 

참고문헌
Cody, Francis. 2023. The News Event: Popular Sovereignty in the Age of Deep Mediatization. University of Chicago Press.
Lepinay, Vincent and Latour, Bruno. 2009. The Science of Passionate Interests: An Introduction to Gabriel Tarde’s Economic Anthropology. Prickly Paradigm.
Samet, Robert. 2019. Deadline: Populism and the Press in Venezuela. University of Chicago Press.
라투르, 브루노. 2016. 황희숙 역. <젊은 과학의 전선: 테크노사이언스와 행위자-연결망의 구축>. 아카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