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에서 주최한 김대현 박사의 학위논문, “성 규범의 지식·제도와 반사회성 형성, 1948~1972” (연세대학교 사학과 박사학위논문, 2023) 발표회에 토론문으로 제출한 글. 호명에 걸맞는 자격을 갖추었는지는 모르겠으나, ‘푸코 연구자’로서 논문을 평해줄 것을 요청받았기에 이에 집중하여 작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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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문
‘규범화(normation)’를 넘어 ‘정상화(normalization)’에 대한 연구로
김대현의 박사학위논문 <성 규범의 지식·제도와 반사회성 형성, 1948~1972>는 해당 시기 한국사회의 ‘성 규범’과 ‘반사회성’이라는 범주를 형성시킨 힘과 실천의 선분들(lines)을 추적한 연구라 할 수 있다. 이 선분들은 논문에서 등장하는 몇몇 학자들의 말 한마디, 칼럼 하나, 논문 한편에서부터, 가정법원, 육군병원 등의 국가장치들, 범죄심리학, 우생학 혹은 정신분석학과 같은 제도화된 분과학문들, 그리고 그 배후에 놓인 냉전적 질서와 국제기구들을 포괄하는 것으로, 저자는 이 이질적 선분들이 교차하면서 어떻게 당대의 이성애·가족중심적 성규범과 이에 잠재적 위협이 되는 집단을 통칭하는 ‘반사회성’이라는 모호한 범주―저자가 잘 지적하고 있듯이 그 텅 빈 모호함으로 인해 누구든지 채워질 수 있다는 점이 핵심인―를 형성·강화하는데 기여했는지 솜씨있게 서술하고 있다. 어느 정도 저자가 의도한 바 같으나, 토론자는 저자가 직접 인용하는 각종 ‘빻은’ 말들에 때로는 큰 웃음을, 때로는 쓴 웃음을 지으면서 흥미진진하게 읽어 나갈 수 있었다. 다양하고 방대한 자료를 꼼꼼하게 검토하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현재의 운동적 쟁점과 역사연구를 대각으로 이어붙이려는 활동가이자 연구자로서 저자의 진정성과 야심이 느껴지는 연구였다. 아마도 학위논문이라는 틀에 담기에는 너무 ‘위험한’ 그 야심 때문이겠으나, 논문의 구성이나 자료활용 면에서 ‘정상적인’ 논문의 형태에서 이탈한 부분들도 눈에 띄지만, 발제문에서 추측할 수 있듯이 이러한 부분들은 논문 심사과정에서 충분히 저자를 괴롭혔을 것이기에, 굳이 이 자리에서 다시 언급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사실 토론자는 섹슈얼리티 연구자도 현대사 연구자도 아니어서, 이 논문이 해당 담론장에서 어떤 의의를 가지는지를 평가할 능력은 없다. 다만 섭외과정에서 (그 호칭에 맞는 전문성을 갖췄는지 여부와는 별개로) ‘푸코 연구자’로 토론에 임해줄 것을 요청받았기에, 미흡하지만 그 부분에 한정해 토론을 제기해보고자 한다.
1.
저자가 직접적으로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이 논문은 1974-1976년까지 푸코가 행했던 일련의 작업들―<비정상인들>(1974-1975), <감시와 처벌>(1975), <성의 역사 I: 앎의 의지>(1976), 그리고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1975-1976)―을 연상시킨다. 예컨대, 푸코는 <비정상인들>에서 계보학적 연구를 통해, 19세기 서구에 등장한 ‘비정상인(abnormal)’의 형상이 법학·범죄학의 대상인 ‘괴물·교정불가능자’와 성과학·정신의학의 대상인 ‘자위행위자·변태성욕자’가 중첩되면서 형성된 것임을 지적한다. 다소 도식화하자면, 푸코는 이어지는 <감시와 처벌>에서 규율권력(discipline)을 중심으로 첫 번째 형상을, <성의 역사 I>에서 생명정치(biopolitics)를 중심으로 두 번째 형상을 집중적으로 분석하고,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에서는 이 둘이 다시 합쳐지면서 ‘퇴화’에 관한 우생학적 인종담론과 결합하여 군주권(sovereignty)이 생명권력의 틀 속에서 다시 회귀하는 ‘국가인종주의 연구’로 나아간다. 이 때 섹슈얼리티는 세 주요 담론 형성들(formations)―범죄학, 정신의학, 우생학―의 주된 개입대상일 뿐 아니라, 세 주요 권력 형태—규율, 생명정치, 생명권력적 군주권—가 교차하는 장으로서 핵심적인 중요성을 가진다.
푸코의 이러한 기본적인 분석틀은 이 논문에서도 거의 비슷하게 반복된다. 핵심적인 논의 대상으로 성규범이 설정되고, (정신의학이 정신분석학으로 대체되면서 새로운 흥미로운 논점을 낳고 있긴 하지만) 세 가지 주요 담론 형성들 역시 유사한 형태로 등장한다. 저자는 이 담론들의 상호교차 속에서 “비행소년, 사상범, 요보호여자”(242)는 물론, “성매매여성, 정신박약자, 여장남자, 부랑아”(244) 등을 포괄하는 잠재적 범죄성 집단 혹은 비정상적 반사회성 집단이 탄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 푸코가 서구 근대를 대상으로 몇 권의 책에 걸쳐 행했던 작업을, 저자는 한국 사회로 무대를 옮기고 시대적 범위를 좁혀 몇몇 주요 행위자들과 기관에 좀 더 집중하면서 압축적으로 행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푸코 논의틀의 직접적 참조는 논의의 설득력과 효율성, 완결성을 높여주는 만큼이나, 몇 가지 경험적·이론적 질문을 낳는 것처럼 보인다.
2.
먼저 경험적 질문부터 살펴보자. 이는 당연히 서구 근대와 구분되는 1948~1972년 기간 남한 사회의 특수성과 관련된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저자는 이 시기가 한국 사회가 “냉전으로 재편된 국제질서 속에서 미국의 자유민주주의를 규범적 가치로서 받아들이고, 또 한편으로는 그것을 선별하고 비판해나가던 시기”라고 강조하며(28), 실제 반사회성 집단에 ‘좌익 수형자’, ‘사상범’, ‘보안사범’이 함께 포함되고 있음을 반복해 지적할 뿐 아니라, 당대 한국에서 범죄학, 정신분석학, 우생학, 사회복지실천 등의 형성과 발전에 있어 미국의 영향이 절대적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저자의 연구가 ‘반사회성’ 집단의 형성을 통해 궁극적으로는 그것으로부터 위협받는 ‘사회’의 탄생을 논하는 푸코의 국가인종주의 분석틀을 참고하고 있다면, 전쟁 이후 반공체제를 공고히했던 해당시기 한국사회에서 ‘사회보호’의 핵심으로 기능했던 ‘인종없는 인종주의’ 담론으로서 반공담론과 그 대상으로서 ‘빨갱이’ 형상에 대한 분석은 좀 더 적극적으로 시도되었어야 하지 않나라는 생각이 든다(cf. 김득중 2009). 특히 저자가 다루고 있는 5-60년대 한국의 범죄학, 정신분석학, 우생학, 사회복지학이 모두 반공주의와 ‘빨갱이’ 담론형성에 중요하게 기여하거나 활용되었다는 점, 그리고 Donzelot (1979)가 지적하듯이 공산주의에 대한 전통적 공격 중 하나가 공산주의가 反-가족적이며 무분별한 난교를 조장한다는 것이었음을 고려한다면, 조금 더 교차적인 방식으로 이 시기 성규범과 반사회성의 형성에 있어 인종주의로서 반공주의의 역할을 다루었으면 어땠을까라는 아쉬움이 남는다(이와는 별도로 저자가 Donzelot의 작업을 직접 참조하지 않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궁금하다).
3.
두 번째는 좀 더 이론적인 문제로, 푸코의 자기-전회와 관련된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푸코는 앞서 언급한 일련의 작업들 이후, 1970년대 말 자신의 기존 연구틀을 비판적으로 재검토하면서 커다란 이론적 전회를 행하게 된다. 예컨대, 푸코는 1977-78년 이루어진 강의 <안전, 영토, 인구>에서 자신의 기존 분석들이 기반했던 권력의 ‘전쟁 모델’을 폐기(혹은 수정)하고 그 대신 권력의 ‘통치 모델’을 제시하면서, 느슨하게나마 ‘통치(성) 연구’라고 이름붙일 수 있는 새로운 연구방향을 열어젖힌다. 그 전환의 일환으로 푸코는 자신의 기존 연구를 ‘규범화(normation)’에 대한 연구로 규정짓고, 이를 통치를 통한 ‘정상화(normalization)’라는 새로운 프로그램과 엄밀히 구분하고자 시도한다(푸코, 2011: 3강). 그에 따르면 규범화가 이미 존재하는 이상적(ideal) 규범에 기반해 일탈적·병리적·비정상적 존재들을 규율하는 것을 의미한다면, 정상화는 이러한 일탈적·병리적·비정상적 존재와 현상을 그 원인이 무엇이든 간에 언제나 일정 비율로 ‘주어진 것’으로 간주하고, 이들의 리스크를 ‘정상범주’ 내에서 조절하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한다. 조금 길지만, 푸코의 설명을 직접 들어보자.
결국 전염병 통제에 적용되는 규율체계, 나병 같은 풍토병 통제에 적용되는 규율체계의 목표는 무엇일까요? 물론 우선은 병자의 병을 치료하는 것입니다. 적어도 치유가능한 한 말입니다. 그 다음에는 병에 걸리지 않은 사람과 병에 걸린 사람을 격리해 감염을 막는 것입니다. 이와 달리 천연두·우두 접종과 함께 출현하는 장치는 무엇을 목표로 할까요? 이 장치는 병에 걸린 사람과 걸리지 않은 사람을 완전히 분리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병에 걸린 사람과 걸리지 않은 사람을 단절이나 불연속성 없이 총체적으로, 요컨대 인구로 고려합니다. 그래서 인구의 개연적인 발병률이나 사망률 정도, 그러니까 인구 중 병에 걸리고 이로 인해 사망하리라고 예상되는 평균값을 확인하려고 합니다…바로 여기서 우리는 ‘정상적인(normal)’ 발병률과 사망률이라는 개념을 얻게 됩니다…따라서 제 생각에 이것은 규율과 관련해 관찰할 수 있었던 것과는 정반대의 체계입니다. 규율체계는 규범에서 출발했고, 그 규범에 따라 행해진 훈육과 비교하고 나서야 정상과 비정상이 구별될 수 있었습니다. 이와 달리 여기에서는 정상과 비정상의 포착, 상이한 정상 곡선[정규분포곡선-인용자]의 포착이 이뤄집니다. 그리고 상이한 정상성의 분포가 상호작용하도록 만들고, 가장 부적합한 정상성을 가장 적합한 정상성에 근접시키는 식으로 정상화가 가동됩니다. 따라서 여기서는 정상에서 출발해, 뭐랄까 다른 것보다 더 정상이라거나, 좌우간 다른 것보다 더 적합하다고 여겨지는 특정한 분포가 사용됩니다. 이런 분포가 규범으로 사용됩니다(푸코, 2011: 99-101).
여기에서 푸코는 표면적으로는 <성의 역사 I>에서 제기된 인구를 대상으로 한 생명정치의 논의를 반복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정상분포(정규분포)에 기반한 ‘통계적 정상’이라는 개념과 이 정상분포와의 일치 혹은 유지를 ‘정상화’라고 일컫는 새로운 인식을 제시하고 있다. 푸코에 따르면, 이러한 통계적 정상 개념에 기반한 (자유주의) 통치는, 주체에 대한 억압이나 권력의 전쟁모델에서 제기되는 박멸·배제와는 거리가 멀다. “개인들의 욕망에 ‘안 돼’라고 말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돼oui’라고 말할 수 있는가”(같은 책, 117)의 문제가 주가 되는 통치의 문제계에서는, 복잡하고 불규칙해보이지만 사실은 항상적이고 ‘정상적인’ 자살율, 빈곤율, 범죄율, 재해율 등이 작동하는 새로운 “자연성”의 관념이 등장하게 된다(같은 책, 118).1 예를 들어, 규범화 메커니즘에서는 규범에 어긋나는 비행자, 일탈자, 변태성욕자 등은 규범을 따르도록 만들어야 하는 규율의 대상으로 구성되지만, 통치의 정상화 매커니즘에서는 그것이 유전적 원인이든, 사회문화적 원인이든 간에 전체 인구에서 ‘정상적인’ 범위에 존재하는 비행자, 범죄자, 변태성욕자의 비율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핵심은 통계 데이터에 기반해 이들 비정상인 개개인의 리스크를 측정하고 그에 따른 조치를 취함으로써, ‘관용가능한’ 범위 내에서 이들의 리스크를 조절해나가는 것이다.2
이 연구에서 저자는 실정적 의미의 정상과 통계적 의미의 정상 간의 차이를 인식하고 있지만, 이 둘을 엄밀히 구분하지는 않는다: “이 연구는…한국의 성 규범(norm)을 만들어나간 지식·제도와 그로부터 연동된 반사회성의 형성 과정에 주목하고자 한다. 얼핏 성 규범과 반사회성 사이의 연결고리가 와닿지 않을 수 있지만, 비단 성을 떠나서 ‘규범’의 핵심적인 특징은 거기에 통계의 발상이 가미되어 그를 근거로 표준과 평균값이 결정되고, 그에 따른 좁은 의미의 규범적인 이상과 그 주위의 근방역(proximity)이 설정되는 것이다.”(1) 하지만 우리가 이 실정적 정상과 통계적 정상 혹은 규범화와 정상화의 구분을 좀 더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면, 저자가 조명한 범죄학과 우생학, 정신분석학과 같이 미시적이고 개별적인 차원에서 품행을 문제삼아 이들에 개입하는 규범화 메커니즘을 구성하는 선분들에 덧붙여, 정상화의 층위에서 작동하는 또 다른 이질적 선분들에 대한 분석이 요구된다는 점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아마도 동시대 이러한 정상화의 역할을 담당했던 것은, 범죄심리학, 우생학, 정신분석학보다는 범죄통계학, 보건위생학, 행동주의 심리학, 사회통계학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시기 성규범과 반사회성 형성과 관련된 좀 더 광범위한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정상화와 관련된 추가적인 실천과 힘의 선분에 대한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
동시에 이러한 관점에서 보자면, 저자의 논문에서 서술된 경합하는 이질적 담론들 그리고 그 담론들 간의 관계 역시 조금 다른 관점에서 바라볼 여지가 생기는 것 같다. 예컨대, 정신분석학이나 이것을 차용한 성규범에 대한 당대의 문화인류학적 접근들이 “이성애·시스젠더 규범이 타고난 것이며 이를 거스르는 것을 선천적인 악질로 놓던 우생학의 그것과 비교하면, 이는 분명 성에 대한 진일보한 인식이었다”(102)라는 저자의 평가는, 여전히 비정상의 발생 원인에 천착하는 규범화 메커니즘의 관점에서만 타당한 평가일 것이다. 오히려 정상화의 차원에서 바라봤을 때, 이러한 nature vs. nurture 혹은 생물학 대 문화의 대립구도는 부차적인 것이거나, 전후 미헤게모니의 국가-간-체계와 문화적 인종주의를 직접적으로 뒷받침했던 문화연구자들의 ‘자기-재현’에 가까운 입장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3 한편 정상화의 관점에서 보자면, 규범화 매커니즘에 좀 더 친화성을 가진 정신분석학이 왜 당시에 행동주의(behaviorism)에 기반한 정신의학·심리학과의 대결에서 패배하여 제도에 안착하지 못한 채 주변화되었는지, 반면 애초에 통계의 문제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 우생학은―저자가 강조하듯이, 다른 담론들과 결합한 ‘확장우생주의’의 형태로―여전히 살아남게 되었는지도 일정정도 설명 가능하다.4 또한 이와 관련해서 애초에 통계적 리스크 측정에 기반한 미국식 사례관리의 사회복지적 실천이 당대에 왜 기존의 논의들과 이질적인 관계를 형성하면서도 향후 사회복지 방법론의 주류로 자리잡게 되는지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4.
분명하고 뚜렷한 문제의식을 가진 저자의 논문에 이렇게 다소 크고 두루뭉실한 문제들을 제기하는 이유는, 서두에 언급한 ‘웃음’의 성격을 해명하고 싶어서이다. 아마도 이 자리에 참석한 분들을 포함해 이 논문을 일부러 찾아 읽을 많은 이들은, (저자가 어느정도 의도한 바대로) 논문에 등장하는 과거 전문가들의 각종 ‘빻은’ 소리들에 대해 웃음을 참기 힘들 것이다. 그리고 이 웃음은 다시 한 번 푸코를, 즉 <말과 서물>의 서문에서 보르헤스의 ‘어떤 중국백과사전’이 야기하는 웃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푸코를 떠올리게 한다. 푸코는 이 웃음을 과거의 오류 혹은 지나간 이데올로기에서 ‘이제는’ 우리가 ‘계몽’되고 ‘해방’되어 세계를 보다 투명하고 정확하게 인식하게 되었다는 증거로 받아들이지 말 것을 경고한다. 오히려 <말과 사물> 전체가 보여주듯이, 과거의 무지를 향한 우리의 웃음은 단지 우리가 현재 이질적인 권력의 선분들과 상이한 가지성의 틀에 연루되어 있다는 사실을 보여줄 뿐이다. 그렇다면 저자의 논문이 야기하는 우리의 ‘웃음’은 ‘무지한’ 과거와 ‘계몽된’ 현재 간의 안전한 거리를 재확인하는 제스처가 아니라, 오히려 지금 우리가 딛고 있는 발밑을 들여다보는 촉매로 기능해야 한다. 따라서 이 꼼꼼하고 치열한 논문이 던지는 숨겨진 질문과 과제는, 결국 현재 우리가 연루되어 있는 권력의 선분들, 가지성의 틀이 무엇인지, 그것이 앞서의 역사 속에서 어떻게 잠재적으로 발견되는지를 밝히는 작업일 것이다. 이미 훌륭한 저자의 작업이 좀 더 치밀한 ‘현재의 역사’가 되기 위해서, 이러한 새로운 질문의 선분들이 덧붙여지기를 바란다.
각주
- 이것은 ‘norm’ 혹은 ‘normal’이라는 의미에 담긴 이중적 의미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예컨대, 자살이나 범죄는 규율화의 관점에서는 교정되어야 할 ‘비정상적인’ 것이지만, 사회 전체적인 차원에서 일정한 정도의 범죄율과 자살율은 예외적이지 않은 ‘정상적인’ 현상이다.
- 물론 실제 현실에서는 이 규범화와 정상화 과정은 긴밀히 결합되어 나타나게 되지만, 이 개념적 구분은 결정적이어서 이후 푸코는 동료들과 함께 행한 이러한 정상화 장치들에 대한 분석(<푸코 효과>에서 행해지는 통계학, 보험, 예방의학에 대한 분석 등)과 함께 이러한 정상화의 효율성을 극대화한 통치의 한 유형으로서 신자유주의 통치성에 대한 분석(<생명정치의 탄생>)으로 나아가게 된다.
- 4장에서 윤태림이 자신의 작업에서 참조하는 미국의 문화인류학은, 설립자인 프란츠 보아스에서부터 생물학적 인종주의에 맞서 ‘문화’ 개념을 전면에 내세우게 된다. 이 과정에서 보아스의 제자이자 미국을 대표하는 문화인류학자인 루스 베네딕트, 마가렛 미드, 클라이드 클럭혼 등은 정신분석학을 참조하여 각 민족들의 정신형태의 차원에서 분류하고, 민족적 차원에서의 차이를 해명하는 Culture and Personality 학파를 형성한다. 이들의 민족성격론(national character) 작업은 2차 세계대전 이후 국가-간-체계에 기반한 미국 헤게모니의 작동에 있어서 문화적 인종주의 혹은 냉전 자유주의를 뒷받침하는 담론적 역할을 수행한다.
- 예컨대, 로베르 카스텔은 우생학은 개개인의 위험함(dangerousness)보다는 리스크의 측면에서 사회보호를 사유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정상화의 문제를 제기한 담론 형성으로 평가한다(카스텔 2014: 411).
참고문헌
김득중, 2009. <빨갱이의 탄생>. 선인.
푸코, 미셸. 2011. <안전, 영토, 인구>. 난장.
카스텔, 로베르. 2014. “위험함에서 리스크로.” <푸코 효과>. 난장.
Donzelot, Jacques. 1979. The Policing of Families. Pantheon